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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3-01-03 13:08:30
   학교서도 사회서도 발 딛지 못한 ‘무중력’ 아이들, 꿈을 품다_가정형Wee센터

학교서도 사회서도 발 딛지 못한 ‘무중력’ 아이들, 꿈을 품다

ㆍ학업중단 위기 학생 치유하는 국내 첫 가정형 돌봄센터 ‘경청과 환대’

서울에서 2시간쯤 차로 달렸을까. 지난 18일 오전 11시 대전 대덕구 송촌동의 한 주택가에 들어섰다. 한집 한집 지번을 좇아가니 3층 다세대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경청과 환대’. 대문에 써붙인 간판만 아니면 서민들의 삶터와 다를 게 없는 붉은색 벽돌집이었다. 이곳은 학업중단 위기를 겪는 아이들이 기숙하며 치유받을 수 있도록 2010년 국내에 처음 들어선 ‘가정형 위(Wee)센터’다. 위센터는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연계해 학교폭력이나 학습부진, 부적응 등을 이유로 학교를 떠나려는 아이들을 상담으로 선도하는 서비스다. ‘경청과 환대’가 생기기 전 모든 위센터는 기숙형이 아니라 가정과 상담실을 오가는 형태였다.

빌라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에서는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가 흘러나왔다. 오디오 기기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니었다. 피아노와 기타를 반주로 10대 남자들이 화음을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이틀 후 ‘학기말 발표회’가 열린다고 했다. 3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방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연습 중이었다. 거실과 주방에서는 발표회에 낼 그림과 장식물을 손보는 아이들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3층 집 전체가 한창 리허설로 북적이고 시끌시끌했다.

대전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가정형 위센터 ‘경청과 환대’에서 아이들이 유낙준 신부(오른쪽에서 두번째)와 함께 ‘학기말 발표회’에 선보일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가정형 위센터는 학업중단 위기에 있는 아이들이 기숙하면서 돌봄을 받는 곳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저요? 지쳐서 왔어요.”

중학교 3학년 이성민군(15·이하 가명)은 6월 초 몸도 마음도 녹초가 돼 이곳에 왔다고 했다. 부모가 다투기 시작한 지 1년 넘었고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이군은 “공부만 시키는 게 갑갑했다”며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고, 식당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거나 친구들과 거리를 쏘다녔다. 한 살 터울인 여동생까지 가출을 했다. “아빠와 세상이 밉고 살기도 싫었어요.” 이군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다. 우울증세가 심해진 그는 6개월 전 어머니에게 가정폭력 대처법을 조언해주던 YMCA 상담원의 소개로 위센터를 찾게 됐다.

“지금요? 자살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깨달았어요.”

6개월 사이 느낀 것을 묻자 이군은 “변화가 많았고 다시 꿈도 생겼다”고 말했다. 교사와 상담하고 아이들과 놀고 여행하고 명상하고 발표회도 가지면서 한계단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올 겨울방학에는 제과·제빵과 양식 요리학원에 등록하고 자격증도 딸 생각이다. 중학교 때 막연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가 잃어버렸던 요리사의 꿈을 되찾은 것이다. 그는 내년 봄 일반계 고교에 진학한 후 대학도 가고 싶다고 했다. 이군은 “훗날 소박한 음식점을 내고 싶다”며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민요? 당장은 아빠와 함께 자고 올 캠프예요.”

최근 몇 개월 새 엄마와 아빠의 관계도 어느 정도 좋아졌고, 가출했던 여동생도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아빠에 대한 원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센터생활 중에 가끔 집에 가도 아빠와는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오곤 했다. 주말 캠프를 두고 은근히 설레고 생각도 많아지는 이유다. 위센터는 아이들과 가족의 유대를 위해 정기적으로 1박2일 캠프를 연다. 이번 캠프는 내년 1월4일 열리고 이군은 아빠와 함께 참가한다. 이군은 “아빠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빠니까 최대한 잘 지내다 오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학교가 싫어”
획일적 공부만 강요하는 어른과 세상에 지쳐서
저마다 상처를 안고 들어와

▲ “어, 그게 아니네”
친구와 여행하고 상상하며 자신의 장점 발견하고 자존감 찾아
그러는 새 아이들이 부쩍 커져

▲ “이젠 꿈이 있어요”
“전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어요”
아이들 80%가 학교로 복귀

위센터에 온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아직 차가웠다. 한번씩 터뜨리는 말 보따리에는 학교와 친구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저만의 상처와 응어리가 보였다.

고1인 이석주군(15)은 “학교에 오전 7시30분까지 등교하려면 6시30분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각이 잦다보니 허구한날 학교에서 야단을 맞고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이군은 “공부 잘하는 일부 아이들을 위해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이 벌 서는 곳”이라고 학교를 표현했다.

박영애양(15)은 “학교 선생님은 화장하고 치마 짧게 입는다고 잔소리하고 심지어 나더러 짐승새끼만도 못하다고 했다. 무조건 공부 공부만 외치는 이 세상이 원망스럽고 속박받지 않는 삶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많이 못 벌더라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황수진양(15)은 “공부 잘하는 오빠와 자꾸 비교하는 어른들이 싫어 학교에 가방만 던져놓고 나가 놀았다”고 했다.


불만을 쏟아냈지만, 위센터는 아이들에게 질풍노도 시절의 분노와 방황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힐링(치유) 공간이 되고 있었다. 버려지고 뒤처진 상처를 보듬는 시간이 됐다는 쪽으로 대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고1 양선규군(15)이 그랬다. 그는 위센터에 오기 전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까지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 수업을 듣는 게 지옥이었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멍하니 딴 생각하는 날이 대부분이고,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떠올랐다. 3명의 친한 친구들마저 자퇴하자 학교에 더 가기 싫어졌고 결석을 밥 먹듯 했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그는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 얘기를 듣고 ‘어떤 곳일까’ 싶은 맘으로 위센터를 찾은 것은 8월 말,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꿈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고요.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도 갈 생각이고, 옷가게를 하거나 기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또 헬스장 트레이너도 되고 싶어요.”

양군은 “친구들과 여행하고 명상하고 기타를 배우면서 내가 존중받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일반 학교도 미술·음악과 같이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각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멘토는 누구일까. 유낙준 신부(53)다. 그는 1997년 청소년쉼터의 모태인 가출청소년센터를 대전 성남동에 개설하고 15년간 ‘거리의 10대들’과 고락을 함께해 왔다. 개인적으로는 “빈민운동을 하다가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보게 됐다”고 했다. 현재 국내에 4곳이 생긴 가정형 위센터도 2년 전 대전에서 그가 처음 시작했다. ‘경청과 환대’라는 독특한 이름과 같이, 벼랑 끝에 선 청소년들의 몸과 맘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는 간헐적 상담보다 가정형·기숙형 생활이 좋겠다고 본 것이다. 유 신부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같은 가정적 요인으로 위기에 빠진 아이들은 문제 가정과 상담실을 오가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무엇보다 아이의 일상과 처한 환경을 바꿔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주도로 만들어진 위(Wee) 프로젝트는 3단계다. 단위 학교별로 운영되고 있는 상담실인 ‘위클래스’, 전국 136곳에 있는 위센터, 시·도교육청별로 고(高)위기군 학생들을 기숙형으로 장기위탁교육하는 위스쿨이다. 하지만 위스쿨은 전국에 4곳밖에 없고, 살던 지역을 떠나온 아이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일도 많다. 2010년 3월 유 신부는 교과부 담당 과장을 찾아가 가정형 위센터를 직접 제안하고 담판을 지었다. 정부도 학업중단 학생들의 돌봄 체계에 허점과 틈새가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해 10월 대전교육청의 위탁을 받아 지역사회(대한성공회유지재단)가 운영하는 남학생용 가정형 위센터가 선보였고, 올해 10월엔 여학생용 센터도 인근(중리동)에 문을 열었다. 남학생 센터는 3층짜리 가정용 다세대 빌라 한동을 LH공사로부터 보증금 2300만원, 월 26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해 쓰고 있다. 1·2층 6개의 방에서 아이들이 두세 명씩 살고 3층엔 아이들이 모여 식사하는 주방과 교무실이 있다. 여학생 센터는 독립된 장소를 구하지 못해 현재 상업용 건물을 임대 중이다.

위센터에 기숙하는 아이들은 남자 15명, 여자 20명으로 제한된다. 소수일수록 프로그램의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청과 환대’라는 이름도 내 집 같은 환경과 부모와 같은 따뜻한 돌봄을 지향한 것이다.

현재 아이들은 학교폭력 가해·피해자, 가정폭력 피해 학생, 학교부적응 학생이 주를 이룬다. 학교 교사가 데려올 때도 있고, 학부모가 직접 전화를 걸어 위탁해오는 아이도 있다. 유 신부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라는 구분은 옳지 않다”며 “가해 학생도 남모르는 마음의 상처가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말하는 위센터 ‘경청과 환대’의 하루는 촘촘했다. 기상 시간은 아침 7시. 30분 후에 다함께 주방에 모여 아침식사를 한다. 유 신부는 식사에 각별히 관심을 쏟는다고 했다. “나와 타인, 우주의 소리를 귀담아 듣게 도와주고 엄마의 마음처럼 정성을 느낄 수 있는 밥상을 봐줄 때 아이들이 기운을 얻고 스스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먹은 그릇을 스스로 설거지한다. 이불 정리와 세면을 마치면 아침운동을 한다. 국민체조를 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학교에서 시험이나 수행평가에 참여하도록 통보받은 학생은 따로 등교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9시30분 센터에서는 좋은 글귀나 성경말씀, 영상을 접한 후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지 자문하는 명상시간을 갖는다. 10시부터 정오까지, 오후 1시30분부터 3시30분까지는 본격적인 수업이다. 오전엔 요일별로 국어·영어·수학 등의 교과과정을 진행한다. 다만 교과서로 하는 공부는 아니다. 가령 국어시간에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표현하는 식이다. 읽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훈련이 중심이다. 학원 강사들도 자원봉사 와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대청소를 끝낸 후 시작하는 오후수업은 영화 감상이나 제작, 음악·미술 활동, 마음 수련 등으로 진행한다. 실습이나 체험이 중심이다. 집단·개인 상담, 힐링프로그램, 자유로운 외출 시간도 매일 주어진다. 스스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극대화하는 시간도 있다. 하루 마무리는 아이들 스스로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명상으로 마친다. 매주 한번은 인근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경청과 환대’ 윤대진 팀장은 “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관심이나 눈길을 받지 못한 비주류였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과 자신감이 없다”며 “이를 회복시켜 건강한 자존감을 만들어주면서부터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하는 게 센터의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난사건같이 골치아픈 일도 적지 않다. 한달 전에도 한 학생의 돈 4만원과 10만원이 넘는 고가 브랜드 티셔츠가 사라진 일이 일어났다. 양심선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아이들끼리 자치회의를 거치고, 결국 교사들까지 나섰지만 자백은 없었다. 저마다 맘 고생이 적지 않았다. 얼마 후 한 아이가 “센터의 다른 아이 부탁을 받아 훔쳤다”고 고백했다. 처벌 문제를 두고 다시 아이들만의 자치회의가 열렸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윤 팀장은 “퇴소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 그렇게 결론을 내릴 줄 알았는데 용서해주자고 결정했다”며 “아이들은 그 아이를 퇴소시키면 스스로 도벽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더라”고 전했다.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의 키가 타인을 섬세히 배려할 만큼 부쩍 커진 것이다.

2년 전 문을 열고 ‘경청과 환대’를 거쳐간 아이들은 그동안 60명. 이 가운데 80%는 학교로 돌아가 잘 적응하고 있고, 일부는 대학에도 진학했다. 유 신부는 “많은 아이들이 일반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학교가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창의와 자유를 원하는데 학교에는 경쟁과 억압만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학교나 사회는 긴 안목으로 살도록 가르치지 않아요긴 안목을 가져야 관용과 배려, 좀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데 당장 눈앞의 이익만 취하는 걸 가르치니까 왕따, 폭력이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건강해지려면 3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찰과 묵상,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기다려주는 참된 스승, 그리고 진짜 친구가 필요하죠네 옆자리의 친구가 경쟁자라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2-12-28 21:20:10수정 : 2012-12-31 13: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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